생동주의자

53 소화력

핵심 선언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정리되는 과정입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해버려.”
  • “생각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 “빨리 결론 내고 털어버려야지.”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 말 어디에도, 고민을 제대로 통과해야 한다는 말은 없기 때문입니다.


고민은 문제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음식을 생각해보세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그것이 입안에 있는 상태. 아직 삼키지도 않았고, 뱉지도 않은 상태. 바로 그것이 고민입니다.

고민이 시작됐다는 것은 무언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는 신호입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아직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첫 번째 단계입니다.

고민은 없애야 할 불편함이 아니라, 시작된 정리의 신호입니다.


불편하다고 바로 뱉어내면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씹는 도중에 뱉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맛도 모르고, 영양도 없고, 그 음식은 그냥 사라집니다.

고민도 같습니다. 불편하다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버리면, 정작 그 고민이 나에게 남겨주려 했던 것들, 즉 통찰과 방향과 깨달음이 함께 사라집니다. 해결한 것 같지만, 실은 회피한 것입니다.

씹지 않은 음식은 소화되지 않습니다. 충분히 다루지 않은 고민도 정리되지 않습니다.


오래 씹는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것이 있습니다. 고민을 오래 한다는 것이 그 자리에서 괴롭게 머문다는 뜻이 아닙니다.

씹는다는 것은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자꾸 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 조금씩 부수어가는 것입니다. **"이게 왜 나를 불편하게 하지. 이 감정 아래에 뭐가 있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뭐지."** 이 질문들이 씹는 행위입니다.

버티는 것은 소화가 아닙니다. 천천히 되새기는 것이 소화입니다.


충분히 씹고 나면, 양분과 찌꺼기가 나뉩니다.

잘 씹은 음식은 몸 안에서 양분과 배출물로 나뉩니다. 필요한 것은 흡수되고, 필요 없는 것은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나옵니다.

고민도 충분히 통과하고 나면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가져가야 할 것은 남고, 내려놓아야 할 것은 정리됩니다. 이것이 고민이 완성되는 방식입니다.

빨리 없애려 했던 그 고민이, 사실은 가장 필요한 양분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고민하고 있는 당신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민 중인 학생에게, 고민 중인 부모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직 더 나아지고 싶다는 뜻입니다.

고민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닙니다. 정리를 시작한 사람의 첫 번째 용기입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지금 씹고 있는 중입니다. 그 시간이 길수록, 나중에 남는 것은 더 선명해집니다.


진정한 의미

고민은 없애거나 해결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충분히 씹어서 소화시켜야 할 과정입니다. 불편하다고 너무 빨리 뱉어내면, 그 안에 담긴 양분까지 함께 잃게 됩니다. 오래오래 꼭꼭 씹을수록, 남길 것과 내려놓을 것이 선명하게 나뉩니다. 고민이 시작됐다면, 이미 정리는 시작된 것입니다.

고민하고 있는 것, 그것이 이미 첫 번째 단계입니다.

천천히 씹으세요. 양분은 반드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