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연기
핵심 선언
“나는 기쁠 수도, 슬플 수도, 진지할 수도, 멍청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나의 능력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 “나는 지금 이 상황에 맞는 나를 쓰고 있는가.”
- “혼자일 때의 나와, 누군가와 함께일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인가.”
- “능력이란 무엇인가. 잘하는 것인가, 아니면 맞게 쓰는 것인가.”
이 질문들 앞에서 멈춰본 적 없다면,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능력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능력을 하나의 크기로 생각합니다. 더 크고, 더 뛰어나고, 더 빠른 것이 좋은 능력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장례식장에서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을 우리는 능력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운동장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은 크기가 아니라, 맞음에서 드러납니다.
상황에 맞는 나를 꺼내는 것. 그것이 진짜 능력의 시작입니다.
시간의 틀 안에서, 나는 여러 개입니다.
기쁨도 나이고, 슬픔도 나입니다. 진지함도 나이고, 멍청함도 나입니다.
이것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이 모두가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순서대로 쓰이는 나의 도구들입니다. 나는 하나의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달리 쓰이는 여러 겹의 존재입니다.
어떤 시간에는 기쁘게, 어떤 시간에는 진지하게. 그 전환이 자연스러울수록, 나는 더 넓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혼자서도, 함께서도 가능합니다.
이 능력의 특별한 점은 혼자일 때도,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혼자 앉아 웃음을 떠올리는 것도 나입니다. 조용히 슬픔을 마주하는 것도 나입니다. 이때 나는 나 자신과의 관계 안에서 그 틀을 씁니다.
그리고 너와 함께할 때, 그 틀은 더 넓어집니다. 네가 슬플 때 나는 진지해지고, 네가 웃을 때 나는 기쁘게 반응합니다. 나의 틀은 혼자일 때 단단해지고, 함께일 때 비로소 넓어집니다.
멍청함도 능력입니다.
여기서 잠깐 멈춰보겠습니다. 기쁨과 슬픔, 진지함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멍청함은요?
멍청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거운 순간에도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멍청함을 허락하는 사람만이 진지함을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진지하고 완벽하려는 사람은, 결국 어떤 상황에도 맞지 않게 됩니다.
상황을 읽는 것이, 나를 쓰는 것입니다.
도구가 아무리 많아도 꺼낼 줄 모르면 소용없습니다.
기쁨이 필요한 자리에 슬픔을 꺼내고, 진지함이 필요한 자리에 멍청함을 꺼내는 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상황을 읽고, 그 순간에 맞는 나를 꺼내는 것. 그것이 시간의 틀을 잘 쓰는 삶입니다.
나는 이미 그 도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꺼내는 연습이 필요할 뿐입니다.
진정한 의미
능력은 하나의 모습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기쁘게, 슬프게, 진지하게, 멍청하게. 상황에 따라 달리 쓰이는 나 자신이 가장 넓은 능력입니다. 혼자서도, 누군가와 함께서도 그 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가장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상황에 맞게 쓰는 것. 그것이 삶을 잘 사는 방식입니다.
상황에 맞는 나를 꺼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