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주의자

19 태도의 차이

핵심 선언

“나를 대하는 법과 너를 대하는 법은 달라야 합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 “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데, 막상 다른 사람에게는 왜 이렇게 기대가 많은 걸까.”
  • “아니면 반대로, 나는 늘 채찍질하면서 타인에게는 지나치게 맞춰주고 있지는 않은가.”
  • “나를 대하는 방식과 너를 대하는 방식, 나는 지금 제대로 구분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을 한 번도 구분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면,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나와 너는 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저울을 생각해보세요. 양쪽에 같은 추를 올린다고 해서 언제나 공평한 것이 아닙니다. 한쪽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자리이고, 다른 한쪽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나를 향한 태도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그 방향은 내가 정해야 합니다. 반면 너를 향한 태도는 여백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는 내 기준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기준 없는 나는 흔들리고, 여백 없는 관계는 숨막힙니다.


나에게 엄격하고, 너에게 관대한 것은 약함이 아닙니다.

흔히 자신에게 엄격하면 강한 사람처럼 보이고, 타인에게 관대하면 만만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세우는 것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여백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을 신뢰하고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힘입니다.

자신을 향한 엄격함과 타인을 향한 관대함. 이 둘이 함께할 때 비로소 관계는 건강해집니다.


혼동할 때 관계는 무너집니다.

나를 대하듯 너를 대하면 상대는 숨막혀합니다. 너를 대하듯 나를 대하면 나는 방향을 잃습니다. 내 기준을 타인에게 투영하는 순간, 그것은 기대가 되고 실망이 되고 결국 갈등이 됩니다.

반대로 타인에게 허락한 여백을 나 자신에게도 무한정 허락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를 멈춥니다.

나와 너를 혼동하지 않는 것. 그것이 건강한 관계의 출발입니다.


다르게 대하는 것이 차별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나에게도 관대해야 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나에게도 용서와 위로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수 앞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타인에게도 기대를 가질 수 있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요구가 아닌 바람으로, 강요가 아닌 응원으로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다르게 대한다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존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

나를 대하는 태도와 너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야 합니다. 나에게는 방향을 묻고, 너에게는 속도를 허락하십시오. 나를 향한 기준이 선명할수록, 너를 향한 여백은 더 진심이 됩니다. 이 구분이 흐려질 때 우리는 스스로도 잃고, 관계도 잃습니다.

나를 제대로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너를 제대로 대할 수 있습니다.

구분하는 것, 그것이 진짜 존중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