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주의자

34 대화의 정의

핵심 선언

“대화는 나와 네가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해석하고, 나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 “나는 분명히 잘 전달했는데, 왜 상대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걸까.”
  • “저 사람 말을 들었는데, 내가 들은 게 맞는 건가.”
  • “대화를 나눴는데, 왜 더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이 경험이 낯설지 않다면, 지금이 바로 그 이유를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대화는 말의 교환이 아닙니다. 각자의 해석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대화에는 사실 두 개의 ‘나’가 있습니다.

렌즈를 생각해보세요. 같은 풍경도 어떤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대화 속에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합니다. 하나는 너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내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에 대한 정보를 꺼내어,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나'라는 필터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대화는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에도,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에도.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해석합니다.

어떤 부모가 아이의 말을 듣습니다. “오늘 학교 별로였어.” 이 짧은 한 마디를 두고, 부모는 순식간에 수많은 해석을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공부가 힘든가’, ‘친구 문제인가’.

하지만 그 해석들은 아이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 대해 쌓아온 정보와 경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 만들어낸 나만의 그림입니다. 아이가 한 말과 부모가 들은 말은 같은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상대를 봅니다.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나를 그대로 전달하지 못합니다.

내가 말을 꺼낼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나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느끼는 것, 지금 이 상황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을 조합해 말을 만듭니다. 그 말은 내 안의 나를 완전히 담지 못합니다.

내가 표현하는 나는, 진짜 나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받아들이는 나는, 그 일부를 또 상대의 방식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화는 완전한 전달이 아닙니다. 언제나 해석의 틈이 존재합니다.

그 틈을 이해하는 것이, 오해를 줄이는 첫 번째 걸음입니다.


그렇다면 대화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대화가 어려운 이유는 상대가 까다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상대를 해석하는 방식과, 상대가 나를 해석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기준으로 너를 봅니다. 너는 너를 기준으로 나를 봅니다. 그 두 개의 해석이 만나는 자리가 대화인데, 우리는 그것을 마치 같은 것을 보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그 착각이 대화를 어렵게 만듭니다.

대화를 잘 한다는 것은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해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좋은 대화는 해석의 간격을 좁혀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이해가 목표는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해석은 결코 완전히 같아질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간격을 인정하고, 조금씩 좁혀가는 태도입니다.

“내가 이렇게 느꼈는데, 너는 어떻게 받아들였어?” 이 한 마디가 해석의 간격을 좁힙니다. 나의 해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해석을 물어보는 것. 그것이 대화를 대화답게 만드는 태도입니다.


진정한 의미

대화는 정보의 교환이 아닙니다. 너에 대한 정보를 내가 해석하는 것과, 나에 대한 정보를 내가 표현하는 것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가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오해를 탓하지 않고 해석을 돌아보게 됩니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 전에, 내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 그것이 진짜 대화의 시작입니다.

대화가 어긋날 때, 먼저 나의 해석을 점검하십시오.

해석을 아는 사람이, 대화를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