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주의자

72 미성년

핵심 선언

“미성년의 시간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그 조건 안에서도 아이는 이미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

이런 장면, 낯설지 않으신가요?

  •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내 삶인 것 같지 않을까.”
  • “아이가 반항하는 게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은 건 아닐까.”
  •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랬을까.”

쉽게 지나치던 질문들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들이 쌓이는 곳에서, 한 사람의 성장이 시작됩니다.


뇌는 태어날 때부터 살아남으려 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뇌는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생존입니다. 배고프면 울고, 따뜻하면 잠들고, 위험하면 피합니다. 이것은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본래부터 가진 일입니다.

그리고 성장하면서도 이 본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와 너, 즉 아이와 부모 모두 각자의 뇌로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남으려 합니다. 문제는 그 두 생존이 같은 공간 안에서 부딪힌다는 것입니다.

생존은 본능이지만, 그 방향은 선택입니다.


미성년의 시간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부모의 경험은 아이에게 피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먹는 것, 자는 곳, 배우는 방식, 대화하는 습관. 아이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안에서 자랍니다.

그 안에서 아이는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는 부모의 경험이 그대로 아이의 기준이 되는 경우입니다.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고,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이는 따르는 법을 배우지만, 스스로 고르는 법은 배우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부모의 경험이 바탕이 되되, 아이의 선택이 존중받는 경우입니다. 같은 환경 안에서도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낍니다.

두 길 모두 부모의 경험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도착하는 곳은 전혀 다릅니다.


부모의 경험은 피할 수 없지만, 상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미성년이라는 시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시간처럼 보입니다. 맞습니다. 어느 집에서 태어날지, 어떤 방식으로 길러질지, 아이는 고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아이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냅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두려운 것. 그 신호를 부모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아이의 선택 근육을 키우기도 하고 멈추게 하기도 합니다.

부모의 경험은 아이에게 세상을 먼저 보여주는 창문입니다. 하지만 그 창문이 유일한 출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택권은 나중에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는 부모 말을 들어야지. 크면 알아서 하겠지.”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선택하는 능력은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작은 선택들을 경험해야, 나중에 큰 선택 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밥을 무엇으로 먹을지, 오늘은 무엇을 먼저 할지, 이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서 한 사람의 판단력이 됩니다.

미성년의 시간 안에서도 선택은 연습될 수 있습니다. 그 연습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오래가는 선물입니다.


진정한 의미

미성년의 시간은 아이에게 주어진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 조건 안에서 부모의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 전해지느냐에 따라, 아이의 선택 근육은 자라기도 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피할 수 없는 환경이라도, 존중받는 선택이 함께한다면 아이는 그 안에서 자신의 방향을 찾아갑니다. 1단계의 핵심은 완벽한 자유가 아니라, 작은 선택이 허락되는 경험입니다.

부모의 경험 안에서도, 아이의 선택은 자랄 수 있습니다.

작은 선택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성장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