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주의자

86 안정과 오류

핵심 선언

“남의 틀 안에 있을 때는 편안하다. 그러나 그 틀이 흔들리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고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 “누군가의 방식대로 했는데, 왜 나는 길을 잃은 느낌이 드는 걸까.”
  • “분명 잘 되고 있었는데, 뭔가 하나 어긋나자 전부 무너지는 것 같다.”
  • “나는 지금 내 기준으로 서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기준 위에 얹혀 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멈춰본 적 없다면,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틀 안에 있으면, 처음에는 안정적입니다.

누군가 잘 만들어놓은 틀은 든든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나아가야 할지,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따라가면 됩니다.

학교의 교육과정, 선생님의 풀이 방식, 선배가 검증한 공부법. 이 모든 것이 틀입니다. 잘 설계된 틀은 나를 빠르게 앞으로 데려다줍니다. 남의 틀을 빌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틀에 오류가 생겼을 때입니다.


그런데 틀이 흔들리는 순간이 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늘 맞던 풀이가 틀립니다. 익숙한 순서가 어긋납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기준이 흔들립니다.

이때, 두 가지 선택이 눈앞에 놓입니다. 받아들일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받아들이려 해도 막막합니다. 그 틀이 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기준 자체가 없습니다. 부정하면 잠깐은 편합니다. 하지만 오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수리가 불가능합니다.

집을 빌려 사는 사람을 생각해보세요. 어느 날 벽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고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집의 구조를 모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건드려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방식으로 세운 나의 공부, 남의 기준으로 만든 나의 목표. 그것이 흔들릴 때, 나는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이 됩니다. 수리를 할 권한도, 방법도, 내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틀이 필요합니다.

나의 틀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부딪히고, 틀리고, 다시 세운 방식입니다. 수없이 고쳐온 흔적들입니다.

그 틀은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남의 틀보다 훨씬 허술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류가 생겼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어디가 문제인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내 안에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틀은 빠르게 달리게 합니다. 하지만 나의 틀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받아들임은 기준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준의 문제입니다.

내 안에 기준이 없으면, 오류를 마주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정을 선택합니다. 부정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받아들일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의 틀을 만드는 것은, 오류 앞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준비입니다.


진정한 의미

남의 틀 안에 있는 것은 편안하지만, 그 편안함은 조건부입니다. 틀이 흔들리지 않는 동안만 유효합니다. 나의 틀을 만드는 것은 느리고 불편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오류 앞에서도 스스로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합니다. 기준은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오류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기준이 있다면, 오류는 끝이 아니라 수정의 시작입니다.

나의 틀을 만드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