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동주의자

90 의심

핵심 선언

“틀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의심이라는 이름으로, 나 안에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 “분명히 맞는 방법인데, 왜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 있는 걸까.”
  •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이 환경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한 틀 안에서 반응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 앞에서 한 번도 멈춰본 적 없다면,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우리는 모두 틀 안에서 삽니다.

틀은 처음에 도움이 됩니다. 매번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살아오면서 쌓인 경험이 만들어낸 일종의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지름길이 유일한 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틀은 원래 내가 만든 것인데, 어느새 나를 만드는 것이 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갇힙니다.


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이 만든 틀입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 누군가 가르쳐준 방식,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상식들. 이 틀에 갇혔을 때는 비교적 빠져나오기 쉽습니다.

그 틀을 만든 사람을 의심하면 됩니다. ‘왜 이게 맞다고 했지? 그 사람도 틀릴 수 있지 않나.’ 이 질문 하나가 틀의 벽에 첫 번째 균열을 냅니다.

문제는 내가 만든 틀입니다. 내가 직접 쌓아온 경험, 내가 스스로 내린 결론, 내가 굳게 믿어온 방식. 이것을 의심하는 일은 훨씬 어렵게 느껴집니다.

나를 의심하는 것은 마치 내가 서 있는 바닥을 흔드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나를 의심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남이 만든 틀은 내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그 사람의 경험, 그 사람의 의도, 그 사람의 맥락. 나는 그것을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틀은 다릅니다. 그것이 만들어진 순간, 그때의 상황, 그때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 모든 것이 나 안에 있습니다. 나는 내 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은, 가장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의심은 나를 부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마치 내가 지금껏 쌓아온 것들을 무너뜨리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심은 파괴가 아닙니다. 의심은 질문입니다. ‘이 틀이 지금도 맞는가. 이것이 여전히 나에게 유효한가.’ 라고 묻는 것입니다.

낡은 틀을 내려놓는 것은 나를 잃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넓은 나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의심에서 시작하는 자유.

틀에 갇혔다고 느끼는 순간, 먼저 물어보세요. ‘이 틀은 누가 만들었는가.’

남이 만든 것이라면, 그 사람을 의심하세요. 나와 그의 경험은 다릅니다. 그의 결론이 나의 답일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만든 것이라면, 나를 의심하세요.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압니다. 내 틀의 균열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결국 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

의심은 약함이 아닙니다. 의심은 틀을 인식하는 첫 번째 힘입니다. 남의 틀은 그를 의심함으로써, 나의 틀은 나를 의심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의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나와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틀 밖으로 나가는 문은 항상 열려 있었습니다. 의심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합니다.